관심이 가는 책이 있다. 그 책을 사고 첫 몇 장을 읽고 또 읽어도 진도가 안나가다 몇 년을 책장에 보관만 하게 되는 그런 책들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어떤 계기로 단숨에 훅 읽어버리고는 ‘와 이건 나 인생의 책이다!’라고 감동한다.
나에게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 그랬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비슷한 느낌의 책을 만났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다.
태어난 지 이제 13일 된 우리 둘째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는 중에 심심해서 오디오북을 듣게 되었는데 완전히 몰입, 매료되었다. 그 오디오북은 책의 첫 장만 읽어주다 끝이 나바려서 당장 전자책을 구입했다. 읽다가 아기가 깨면 다시 비록 로보트이긴 하지만 오디오 모드로 들을 수 있는 리디북스에서 990원을 주고 샀다.
다행히 아기는 계속 잠을 자고 있고,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요조라는 인물의 내면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나랑 비슷한데?’ 하는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이 책이 약간 우울한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에 유머러스한 면도 있어 재미있었다. 전혀 웃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가끔 웃길 때 더 웃긴 것 처럼 몰입된다.
요조의 인생에 뭔가 핵심적인 인물들을 만나는 장면은 엄청 짜릿하다. 특히 중학교때 만난 약간 동네바보같은 아이 다케이치의 ‘너 일부러 그랬지?’라는 말 한마디와 ‘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야’, ‘넌 훌륭한 화가가 될거야’ 등의 몇마디가 요조의 인생을 좌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겁이 많은 한 사내의 삶에 대한 이야기. 아주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인, 뭔가 작가랑 주인공이랑 이질감이 전혀없어 일심동체같기도 하고,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육아를 핑계로 아주 오랜만에 책한권을 다 읽어 뿌듯하기도 하고, 둘째 출산 후 엄청나게 바쁘고 힘든 삶을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오히려 아기가 낮에 잠을 잘자서 내가 책을 읽을 시간도 있다는 사실에 뭔가 희망적이라서 더 기분이 좋다.
시간이 된다면 인간실격 책을 필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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