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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e parisienne

파리에서 마케팅 일 하는 교민이 본 넥플릭스 에밀리 인 파리(Emily in Paris) 에밀리 파리에 가다

by 파리 아는 언니 202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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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플릭스의 에밀리 인 파리,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파리에 온 첫 해에서 이 삼년 정도 되었을 때까지 내가 겪은 문화충격도 비슷했다. 파리에서 산지 10년, 마케팅 일은 하고 있는 지 대략 15년, 이 철딱서니 없는 신참 에밀리를 보고 반성하고 있다.

도전도, 열정도, 기발함도, 새로운 친구 사귀기에도 흥미를 잃은 내 모습이 혹시 에밀리의 상사 실비(Sylvie) 같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그 여자 보다 나이도 젊고 커리어도 그만큼 안될 수 있지만 그냥 마음가짐이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의 팬은 아니지만, 나보고 '초심을 잃지 마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적어 놓고, 또 정신이 늙어갈 때 되새김질을 해봐야겠다.

 

 

 

파리에서 외국인으로 살기

혹시라도 누가 '파리에서 살면 에밀리 같이 살아?'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반반'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잘 걸어서 길이나 카페나 아무데서나 친구를 사귈려면 사귈 수 있고, 수와레 (파티, soirée) 같은 데 가면 내가 그 동안 만나 볼 수 없었던 직업, 인종, 성격, 국적, 사회계층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에밀리처럼 운좋게 갑부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아침마다 맛있는 크로와상을 먹을 수 있고, 좋은 향수도 많고, 맛있는 식당도 와인도 천국이다.

 

패션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파리는 정말 패션의 도시이지만, 에밀리처럼 요란하게 옷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특히 아침에 출근할 때 모자 어쩔 ㄷ ㄷ ㄷ 그리고 파리에서 미니스커트가 흔하지 않다. 나도 이건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참 다르다고 생각한 점이다. 파리지엔들은 가슴 골이 보이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한여름이 아닌 이상 다리를 많이 드러내는 옷을 잘 안입는다. 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서 더 과장되게 입혀놓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입는가? 극중 프랑스인 상사인 실비처럼 입는다. 그런데 일터에서는 실비의 옷차림도 과한 것 같다. 보통 마케팅 하는 사람들 만나면 청바지에 브라우스나 흔히 입은 세미정장 같은게 많던데... 뭐 내가 럭셔리 쪽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니까 잘 모를 수도

 

드라마에도 나왔지만 불어는 필수다. 단기 여행은 몰라도 프랑스에 공부나 일을 하면서 살려고 왔다면 불어를 해야한다. 불어를 한마디도 안하는 것은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불어를 배울 생각이 없더라도, 봉주르는 해야한다. 빵집이나 택시나 누구를 만나도 봉주르부터 해야한다.

이 사진은 한창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사진인데, '커피하나' 라고 주문하면 7유로(만원돈), '커피 하나 주세요'하면 4.25(6천원돈)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하나 주세요' 하면 1.4유로(2천원정도) 라고 하는 어느 한 카페의 메뉴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일 안하고 논다?

그럼 일하는 것은 어떨까? 드라마에서는 마치 프랑스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긴 점심시간동안 와인이나 마시고, 일을 잘 못해도 해고 당하지도 않는 것 같이 나온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노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프랑스는 사실 전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6위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프랑스 사람들은 일단 목적과 목표를 잘 세워놓고,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다. 쉽게 말하면 돈이 안되는 일이나 이득이 안되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지 않는다. 그리고 다들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클라이언트나 상사가 시키더라도 논리가 없다면 아니다 라고 반론할 수 있는 분위기다. 그래서 토론을 통해 해결점을 찾아 일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멈춘다. 가게에 들어가도 도와줄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달라붙지 않고 내버려둔다. 뭣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해야 이것 저것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그러니 화장품 가게 안에 대여섯명의 직원이 필요하지 않다.

드라마에서 프랑스인 상사 실비는 가급적 마케팅을 폐쇄적으로 진행하고 싶어하고 에밀리는 명품이라도 인스타 팔로워를 늘리는 등 대중적으로 하고 싶어한다. 실비가 말하는 프라이빗 파티는 정말 흔하다. 어떤 행사를 하더라도 초청장이나 사전약속을 잡아 놓고 하는 것이 많다. 심지어 그냥 전화통화를 하더라도 사전에 약속을 잡는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걸 Avoide uncertainty 라고 또 학자들이 국가별로 점수를 매긴 것이 있는데 프랑스는 굉장히 강한 편이다.

프랑스에서 마케팅

처음 프랑스로 마케팅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왜 거길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미국이 마케팅을 하는데 강하지만, 프랑스는 그것 위에 뭔가 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도 와인, 향수, 관광, 화장품, 문학, 영화, 박물관은 물론이고 그냥 파리라는 도시 자체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데는 뭔가 있고, 그 뭔가를 배우고 싶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노력을 많이한다. 교육 자체도 오랄시험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말을 잘해서 시험감독관을 매료 시켜야 하므로 어릴 때부터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남을 설득시키는데 강하게 훈련된다. Seduction 이라는 말이 남녀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사실 별 것 아닌 것도 화려하고 매력적인 말로 포장이 많이 잘 되어있다.와인 라벨 하나만 보더라도 그 작은 종이 안에 온갖 시작인 표현이 가득하다. 아주 작은 지방의 듣보잡 소도시에도 관광사무소를 두고 마을의 자랑으로 가득채운다. 이건 단순 포장이 아니고 ‘자신감’이다. 단순히 단기 성과를 위한 포장을 넘어 뿌리깊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자랑으로 이런 자신감은 대대손손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럭셔리한 것들이 모여있다. 패션, 디자인, 음식 전부 호화로운 것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중 온전히 프랑스 유일한 전통은 별로 없다. Arte tv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나라 역사스페셜 격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 과거 귀족들은 도자기는 중국산, 섬유는 독일산, 유리나 거울은 이탈리아산 등등 외국의 우수한 생산물들의 수입량이 늘었고, 국가에서는 이를 자국 생산을 강화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각 지방마다 생산물의 품질관리원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생산자들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공산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귀족들과 왕이 직접 사용하면서 홍보에 많이 기여했다고 한다. 누구나 프랑스 빵이라고 알고 있는 크로와상도 시초는 터키왕을 맞이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만든 빵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마카롱 역시 기원은 이탈리아라고 한다. 어쨌든 지금의 럭셔리 왕국의 명성은 단지 100년전 샤넬이 나와서가 아닌 것 같다. 몇 백년 전부터 프랑스는 자기 것이 아니지만 자기것으로 화려하게 포장하여 명성과 판매를 늘리는 천부적인 마케팅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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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드라마 주인공 에밀리가 미국식 마인드를 심는다는 미션을 가지고 발령을 받아 왔지만, 프랑스식 마케팅의 뿌리깊은 정신을 곧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학교에서 배운 국제 마케팅 책을 다시 꺼내보고 정신차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 해야겠다. 가장 먼저는 변화하는 마케팅의 세계를 배우겠다. 이제 미국식 마케팅, 한국식 마케팅, 프랑스식 마케팅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이니까. 또 요즘 인터넷에 마케팅을 검색하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그것과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웹 이나 온라인 마케팅'으로 전체 마케팅 범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지금은 거의 주를 이루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서 각종 행사나 쇼를 못하게 되면서 마케팅의 세계도 아주아주 급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시대의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웹의 세계를 더 배워야 하겠다. 

 

 

 

 

 

 

이 글은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 쓴 것을 가지고 온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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