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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e parisienne

파리에도 임계장이 있을까? 파리의 아파트 경비원

by 파리 아는 언니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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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임계장이야기 책을 읽었다. 임계장님은 직급이 계장이 아니라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인말이라고 한다. 공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은퇴하고 아파트 경비원, 배차업무 등 거의 일용직에 가까운 일을 했다. 연세가 들수록 건강보험이나 산업재해 등을 더욱 더 보호 받아야 하지만 단기계약직의 경우 아프면 짤리는 거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무너질 듯 마음이 아팠다. 하는 일은 정해져 있는데 아파트 입주민들의 심부름까지 해야하고, 이를 안할 경우 직업을 잃을 수 있는 불이익이 있으니 싫어도 억지로 해야한다고 하니 참 세상이 더럽다. 파리에서는 경비원들이 이런 심부름을 안한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은 택배를 일절 대신 받아주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파리에도 임계장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아파트 경비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파리에는 서울에서처럼 그렇게 큰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다. 나는 파리에서 2번 이사를 해서 총 3개의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 세 경비원 이야기를 하고 싶다.

Nexity Studea

10년 전부터 4년간 처음으로 살았던 곳은 학생 기숙사형 아파트다. 여기 1층 입구에는 경비 사무실이 있는데 직원은 총 3명이었다. 그중 1명이 책임자이다. 50대 여성이었다. Nexity 사 소속으로 보였다. 하는 일은 건물 관리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주말은 일을 안 하고, 월-금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도 당시 주 중에는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면 주말에 해야 하는데 관리 사무실이 문을 닫으니 그냥 스스로 해결했었다. 경비 책임자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점심시간이나 주말에는 정말 칼같이 일 안 한다. 핸드폰 번호는 공개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음성 메시지를 남겨놓거나 이메일을 써서 소통했다. 이 여성 관리인은 임계장님이 당한 것 처럼 입주민들의 심부름을 한다거나 절대 을로써 근무를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원하는 것을 부탁해야할 일이 생기면 먼저 사전에 약속을 잡고 방문해서 간절히 부탁했다. 

Faubourg Saint Antoine

남편을 만나서 5년간 산 아파트는 1800년대에 지어진 정말 파리지앙스러운 아파트였다. 대로면에 있는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가면 ㄷ 자 형태로 6층짜리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다. 입구 정 중앙에 경비원 아저씨 사무실이 있고, 입주자들과 상업용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여기를 다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5년간 경비원이 3번 바뀌었는데 첫 번째와 세 번째 경비원은 같은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다. 경비원이기보다는 이웃이다. 아침 8시부터 일하고, 점심시간 1시부터 3시까지는 쉰다. 시간이 되면 문을 딱 닫고, 경비원은 가족이랑 식사를 하거나, 어린 딸아이랑 놀아준다. 두 번째 경비원은 공석을 메우는 임시직이었는데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다른 경비원과는 달리 말 수도 적고, 정말 하루 종일 책과 신문만 보고, 무슨 전달할 메시지가 있으면 쪽지로 적어서 우편함에 넣어놓곤 했었다. 셋 다 엄청 좋은 사람들이었다. 연말이 되면 프랑스에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항상 봉투에 크리스마스카드를 쓰고, 50유로 지폐를 넣고, 초콜릿이나 샴페인을 사서 주었다. 내가 임신해서 또 갓난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 없는 6층을 매일 오르락 내리락하면 경비 아저씨 얀씨는 정말 만사를 제쳐두고 나를 도와주었다. 참 감사한 사람. 동네 형 같은 느낌에 얀씨는 모든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모든 사람들이 얀에게 항상 '고맙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우리 아기한테 가끔 '너도 크면 얀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고 하기도 했다.

Avenue philippe auguste

지금 이사 온 아파트는 되게 크다. 13층짜리 아파트 동 3개가 모여 있고 그 안에는 500가구가 산다. 집주인이 되고 보니 아파트 관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한 아파트의 집주인들은 매년 모여 회의를 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 모임을 상디끄(Syndic, 조합)라고 한다. 물론 작은 아파트는 직접 행정적인 처리를 하면 되지만, 이렇게 큰 아파트들은 외부에 아파트 관리 대행업체를 고용해서 이 관리 대행업체가 모든 일을 하고 조합은 돈을 낸다. 그럼 그 모든 일이 뭐냐?

경비원을 뽑고 월급을 주고 관리하는 모든 일, 공동사용 공간 공사, 매년 실시하는 회의와 선거 관리, 집에 문제가 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창구 운영 등등이다. 엄청 전문화되어 있어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모든 정보가 있고,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집결이 어려우니 온라인 선거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집에 난방에 문제가 있으면 A 회사 연락처 누구, 물에 문제가 있으면 B 회사 누구, 전기에 문제가 있으면 C 회사 누구, 엘리베이터에 문제가 있으면 D 회사 누구 등 딱 체계가 잡혀 있어서 주민들 애로를 해결한다.

우리 경비 아저씨는 60대 후반이나 70대로 보인다. 포르투갈 출신의 로드리게스 씨로 이 아파트에서 엄청 오래 일해온 베테랑이다. 이분도 하는 일 안 하는 일 구분이 딱 되어 있고, 업무시간도 칼이다. 가장 새로웠던 것은 우편물을 절대 대신 수령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고 그것을 사무실에 딱 제일 크게 붙여두셨다. 처음에는 좀 받아주었는데 배송이 잘못될 경우 경비 아저씨를 도둑으로 의심하는 일이 생겨서 그때부터는 절대 안 한다고 한다. 사실 대신 받아 줄 의무도 없는데 그냥 돕는 마음에서 받아주었다가 도둑 취급 당하면 진짜 너무너무 억울할 것 같다. 그래도 전에는 얀이 받아주었는데 이제 대신 받아 줄 사람이 없으니 처음에는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익숙해지니 그냥 집에 있는 날 만 배송을 시키게 되고 어쨌든 잘 적응해서 불편 없이 살고 있다. 저녁에 퇴근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집으로 가는 길에 항상 이 로드리게스 아저씨가 환한 미소로 인사한다. 아 이분에게도 연말에 소정의 봉투를 선물했다. 이분은 감사한 마음에 새해가 되면 경비실 앞 공용공간에서 파티를 여는데 모든 사람들을 다 초청하지는 못하고 아이가 있는 집만 초청한다. 주스랑 직접 구운 과자를 잔뜩 내놓으신다. 부모들끼리 친해지는 데 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못하고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해 주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 남에 직업을 무시하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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